그녀의 마지막 여름이었다. 그 끝이 일주일 뒤일지, 혹은 한 달 뒤일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시간이었다. 매주 목요일 오후면 나는 그녀의 아파트로 향했다. 그녀는 나를, 그리고 우리가 함께 나눌 샴페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다가올 작별을 위한 예행연습이자, 한 주를 버텨낸 우리만의 작은 축제였다. 평소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를 위해 나는 <프루스트의 질문> 중 하나를 골라 던졌다.
"인생의 영웅이 있다면?"
그녀는 샴페인을 한 모금 삼키고는 잔을 탁자에 천천히 내려놓으며 말했다.
"니나 시몬 같은 여자… 그녀의 삶을 알지? 험난한 상황에도 굴하지 않았던 여자. 그런 존재가 영웅이지."
문득, 나는 그녀의 사소한 습관이나 '시어머니'라는 역할 외에는 그녀를 잘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스쳤다. 니나 시몬의 노래를 즐겨 듣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런 이유가 있다는 건 그날 처음 알게 되었다. 내가 니나 시몬의 앨범을 찾아 플레이어에 넣었다. 경쾌한 전주와 함께 익숙한 가사가 흘러나왔다.
"It's a new dawn. It's a new day… And I'm feeling good."
새로운 새벽이야. 새로운 날이야… 그리고 난 기분이 좋아.
'조력사'라는 그녀의 선택. 죽음은 그녀에게 고통 없는 세상에서 맞이하는 새로운 새벽이었을 것이다.
"Oh, freedom is mine, And I know how I feel."
오, 자유는 나의 것이야. 난 내가 어떤 기분인지 알아
그녀는 니나 시몬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도망치는 게 아니야. 가장 나다운 모습으로, 자유로운 곳으로 날아가는 거란다. 그러니 나를 위해 슬퍼하지 말고 축하해 주렴.”
그 외침은 병마나 세월이 그녀의 삶을 휘두르게 두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삶의 주인은 ‘나’였음을 증명하는 승리의 독백처럼 들렸다. 그녀는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았다. 그녀가 떠난 지 일 년이 지났다. 나는 노예처럼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제 발로 담담하게 걸어가는 죽음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건 마지막 순간의 선택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는 타자의 죽음을 통해서 다시 인생을 사는 법을 배운다. 삶은 죽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빛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상실의 자리에는 새살이 돋듯 따뜻한 기억이 자란다. 니나 시몬의 노래를 다시 듣는다. 폭발적인 성량으로 부를 때 느껴지는 벅찬 환희처럼, 나는 그녀가 두려움보다는 후련함과 해방감을 느끼며 눈을 감았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노래 끝에 그녀의 목소리가 겹쳐 들린다.
"I’m feeling good…."
나는 이제 정말 괜찮다